귀향 서사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완성된다
지난 8월 5일 국내 개봉 후 6일 만에 관객 200만을 돌파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문화계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최고의 영화’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고, 이 영화가 함축하고 있는 여러 상징을 분석하는 글들도 계속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여러 편의 영화가 있었고, 전쟁 후 오디세이 장군의 귀향을 다룬 영화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영화 <오디세이>는 지금까지의 관련 영화를 집대성했으면서도, 원작에는 없는 내용을 창작해 작품의 완성도를 크게 높인 대작입니다.
우선 이 영화는 호메르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작품을 하나로 종합한 서사의 완결미를 보여줍니다.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13~12세기에 있었던 트로이 왕국과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으로, 오랫동안 그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8세기경 호메르스가 토로이 측 헥토르 장군과 그리스 측 아킬레우스 장군의 결투를 다룬 <일리아스>, 오디세이 장군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모험담을 그린 <오디세이> 등 두 개의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이 영화는 두 작품의 주요 모티브와 서사를 하나의 영화 속에서 종합했습니다. <일리아스>가 정복의 이야기라면, <오디세이>는 정복을 끝낸 자의 귀향 이야기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고난과 여정을 뜻하는 ‘귀향’(Homecoming)은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서사 구조입니다. 고향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안식, 정체성, 그리고 자아의 회복과 영원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지막 관문인 귀향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장군이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 서사의 시초이자 정점인 ‘오디세이’, 영생을 찾아 세상 끝까지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인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그렇습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탕자의 이야기도 귀향 이야기이며, 도망친 노예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떠도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그렇습니다. 일생의 과업을 수행한 사람의 귀향은 아주 어렵습니다. 여러 이해관계와 평생에 걸친 어려움이 얽히고설켜서 발길을 가로막습니다.
그 어려운 귀향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영화는 주인공의 강력한 의지와 그를 믿는 주위 인물들의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디세이를 끝까지 믿어준 사람은 20년 만에 재회한 아내 페넬로페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거지 행색으로 찾아온 주인을 알아보고 목숨 걸고 싸우는 하인과 유모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혈연관계를 넘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어려움의 연대를 통해 고난을 극복합니다. 저는 평소에 존경했던 분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그분이 더없이 소중해서 우정의 귀한 연대로 생각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절대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우스의 법도’를 어긴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문명과 철학의 의미를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제우스의 법도’란 ‘평화의 표시로 환대하는 사람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개념입니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메넬라오스 왕의 환대를 받고도 그의 아내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는 저주를 받는 것, 오디세이 장군이 퇴각하며 목마를 평화의 선물이라고 위장해 트로이군에 보낸 후 그 목마를 이용해 공격함으로써(상대의 선의와 문명적 규칙을 기만함으로써) 귀향의 저주를 받는 것, 고향 아타카의 구혼자들이 대접을 하찮게 여김으로써 처참한 징벌을 받는 것 등이 바로 제우스의 법도를 위반한 형벌입니다.
이 영화가 어떤 기록을 수립할지는 알 수 없으나, 고전 이야기를 현대적 의미로 포착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임순만 명예장로(1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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