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겪었을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 지금 이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불안은 좋지 않은 감정, 겪으면 안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같이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며 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내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난 정말 불안이 많은 아이이다. 그래서 별거 아닌 일에도 엄청난 불안을 느낀다. 내가 어떤 일에 불안을 느낄 때에 나만 불안해하는 것 같아 더욱 초조해져 더 큰 불안을 겪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답답했던 것은 내가 내 불안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루는 가족과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갔던 날에, 시간이 점점 늦어지자, 못한 숙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날이었고, 숙제를 못 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도 난 내 안에 있는 불안을 통제하지 못했다.
프로이드는 이 불안에 대해서 “모두가 신경증자다”라고 말한다. 즉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이드는 이드(욕망)–자아–초자아의 역할을 나누었다. 이드는 욕망이다. 예를 들어 학원에 가기 싫어하는 게 이드라면, 자아는 “그래도 가야지”라며 통제하는 역할이고, 초자아는 엄격하게 “당연히 가야지!”라며 자아보다 더 강하게 통제한다고 보면 된다.
또 다른 심리학자인 니체를 살펴보자면, 니체는 불안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불안은 없애고 싶어도 쉽게 없앨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들을 보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불안은 없앨 수 없으니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프로이드와 니체의 말처럼 불안이 누구나 겪는 것이고 억지로 없앨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공감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하셨을까?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찬양이 있었다. 또 나는 하나님이 불안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성경도 찾아보았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찬양은 ‘슬픈 마음 있는 자’였다 이 찬양에서 “슬픈 마음 있는 자 누구든지 예수 이름 부르시오.”라는 가사가 있는데 불안하고 힘든 마음이 있을 때 주님을 부르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이 불안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닌 주님께 고백해서 구원을 얻으라는 깨달음을 줘서 책을 읽으며 찬양이 많이 생각났다. 또 베드로전서 5장 7절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그동안 불안을 혼자 감당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이드의 말처럼 불안을 이해하고, 니체의 말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께 내 불안을 고백해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보며, 내 자신의 불안을 고민해 보고 인정할 수 있는 개인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불안을 완전히 이해하고, 인정하긴 어렵겠지만,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권아영(중고등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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